그림으로 독도를 지키는 해산 최수식 화백

독도수호 국민연합 | 입력 : 2017/01/18 [16:44]
▲ 해산 최수식 화백     © 밝은미래뉴스

 純粹時代


해산 최수식 화백의 창작 공간은 제한된 시공간을 넘어 소재의 구분 없이 자유롭게 흐르며 꺼지지 않는 강인한 기백으로 차고 넘친다.

 

일제강점기에 독립활동을 해온 부모님의 전력과 6.25사변의 아비규환으로 모든 가산이 소실되어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던 해산 최수식 화백이 걸어온 인생역정은 일만 가지 묵()의 빛깔처럼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전라도 익산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남다른 소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의 어머니 손에 이끌려 10세 되던 해에 남종화로 유명한 의제 허백년 선생 밑으로 들어간다.

 

어린 해산은 그곳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스승의 그림을 따라 그렸고 허백년 선생은 그의 천재성을 발견하고는 본격적인 도제 수업을 받게 됐지만 이도 잠시 허백년 선생이 자기 고향인 광주로 돌아가면서 매주 토요일이면 오전 수업을 마치고 익산에서 광주로 그림수업을 받으러 다녔다.

 

이후 해산이 14세가 되자 의제 허백년 선생은 이당 김은호 선생에게 보내 도제 수업을 받게 했다. 해산은 그곳에서 채색을 위주로 하는 북종화 화법을 배우면서 동양화의 모든 기법을 아우르자 이당 선생은 더 가르칠게 없다며 서양 미술을 배워서 한국화의 한 획을 그으라는 말씀을 쫓아 1963년 서울대 미대 서양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죽음 속에 피어난 血馬圖


서울대 미대 서양학과를 진학한 해산은 원대한 예술의 웅지를 펼쳐보기도 전에 196363일 시청 앞에서 혈서로 한일 협정 반대시위를 하다가 주동자로 체포되어 프랑스로 국외 추방당한다.

 

연고도 없고 무일푼으로 프랑스 드골공항에 도착한 최수식 화백은 국적도 없이 노숙자처럼 떠돌아 다니는 생활을 2년간 전전하다가 유럽 3대 대학의 하나이자 프랑스 파리를 대표하는 소르본 대학에 실기로 합격했지만 물감조차 살 수 없는 형편이었다.

 

배고픈 대학생활에 지쳐버린 해산은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 자살을 결심하게 되고 한일 수교반대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중일 때 그를 찾아와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시던 어머님의 인견 속치마에 그의 마지막 작품을 그리기로 마음 먹는다.

 

주사기로 피를 뽑아 자신의 눈물을 닦아준 어머님의 속치마에 혈마도(血馬圖)를 그린 것이다.

 

결국 실신 상태에 빠진 해산을 그의 대학친구들이 발견해 살려냈고 그가 그린 그림은 주임교수가 추천해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됐다.

이후 해산 최수식 화백은 1973년 대학을 졸업하고 1975년 귀국했지만 또다시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민중미술에 심취하다가 유신을 반대하던 19791124YWCA 위장결혼 사건에 연루돼 수배자 신세가 되어 지리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YWCA 위장결혼 사건은 윤보선, 함석헌, 김병걸, 백기완 등 1000여명의 민주인사들이 삼엄한 계엄령으로 집회를 갖지 못하자 결혼식을 가장해 서울 명동 YWCA 강당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잠정 대통령 선출저지 국민대회'를 개최한 사건이다.

 

지리산에 들어간 해산은 5년 동안 토굴 속에서 한국화를 연구하고 독서를 만 여권을 독파하면서 작품연구를 통해 세계 최초로 광목을 그림의 소재로 삼아 동서양이 하나로 어우러진 한국화가 탄생하게 된다.

 

현재 세계미술계 31개 장르 중 7장르를 추가한 세계적인 화가로 우리나라 화가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 5대 박물관에서 불란서 루브르박물관 혈마도 영국 대영박물관 미녀와 소 스페인 피카소 박물관 호랑이 일본 우에노 박물관 악녀 미국 카네기 홀 악녀 등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또 해산 선생은 합천 해인사, 서울 조계사, 구례 화엄사, 해남 대흥사, 설악 백담사 대웅전 불사를 했으며 조선왕조 5대 영정을 그리고 1984년 기독교 100주년 기념성화를 3년에 걸쳐 완성시킨 명실상부(名實相符) 세계 최고의 화가로 대한민국 종합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을 3년에 걸쳐 역임했다.

 

지금은 74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나라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독도수호국민연합 상임고문을 맡아 예술의 혼을 불태우고 있다.

 

<독도수호국민연합 자료제공> 


<해산 최수식 화백의 작품소개>


 

일월오봉도(금제, , 태평성대, 명당)

일월오봉도는 조선시대 궁궐 정전(正殿)의 어좌(御座) , 또는 야외 행사 때에는 천막 안의 옥좌 뒤에, 사후에는 빈전(殯殿), 진전(眞殿)에는 국왕의 초상화 뒤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병풍이다.

 

왕권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의도에서 제작된 것으로 조선시대의 왕의 뒤에 놓여 있었는데, 항상 왕의 뒤에 있으며, 죽을 때 또한 같이 묻힌다.

 

또 그냥 병풍만이 있을 때에는 완성된 그림이 아니며, 왕이 앉아 있어야만 비로소 그림이 완성된다고 전해진다(일월오봉도 가족사진. 딸은 달쪽에 아들은 해쪽으로).

 

일월오봉도는 경복궁 근정전 용상 뒤에 병풍으로 비치되어있는 그림으로 빨강색은 태양이고 태양은 임금을 상징하고 하얀 것은 달이고 달은 왕비를 상징한다.

또 다섯 개의 봉우리 중 중앙에 있는 봉우리는 도읍지로 지금의 서울을 상징한다.

 

봉우리 맨 위 문양에서 중앙에서 중단까지는 경복궁 조감도를 그려 넣었으며 하단 양옆 그림에서 오른쪽은 사직단을 표현 왼쪽은 종묘를 그렸다.

 

상단 빨강 태양이 있는 쪽 봉우리는 함경도와 평안도를 상징하는 것이며 그 옆 봉우리는 강원도와 경기도를 상징, 중앙 봉우리 우측 달 아래 봉우리는 충청도와 경상도를 상징마지막 봉우리는 전라도, 제주도를 상징한다.

 

양옆에 있는 붉은 소나무의 의미는 경복궁 건물 전부가 뷹은 소나무(홍송)으로 건축되었다.

 

붉은 소나무는 첫째, 조선,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나무이며 양옆 폭포는 물을 상징하는 것이다.

 

본시 도읍지란 백성들이 먹고 마시고 일용할 수 있는 물이 필요하다.

 

조선 건국 당시에 충청도 계룡산을 포함한 공주와 지금의 서울, 한양을 지정해야 했는데 한양에 한강을 견주어 볼 때 한양에 한강이물의 양이 월등했기에 도읍지가 한양으로 결정되었다.

 

아울러 그림으로 하단 양옆에 바위처럼 그려진 곳은 일명 육조 거리라 불렀다.

 

이조, 병조 , 형조, 공조, 예조, 호조 등 관청이 지금의 세종문화회관과 전기통신부가 있는 자리이다.

 

또한 하단의 중앙에 있는 물결은 백성이고, 파도처럼 보이는 것은 백성들이 유통하던 급전을 상징하는 것으로 만백성, 국민들의 유통에 필수인 만원짜리 지폐에 삽입된 것이다.

혈마도(사업 운, 출세, 왕성한 기운, 액운방지)

원래 혈마도는 한 사람의 생명을 걸고 그려진 그림이다. 혈마도 이름과 같이 재료가 사람의 피가 그림의 재료였지만 피로 그릴 수 없기에 피와 가장 가까운 재료를 찾았다.

 

첫째, 동짓날 쌀죽을 쑤어 먹기 전에 한 그릇을 떠다가 집안 골고루 뿌려주던 풍습이 있는데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풍습으로 집안에 잡귀를 막기 위한 주술행위였다.

 

신라 선덕여왕 이전에는 말에 목을 베어 그 피로 잡귀를 방어하는 주술행위였으나 논경사회이던 그 시절에 말이란 첫째 전쟁무기이자 운송수단이었기에 말의 목을 베어 주술행위를 할 수 없어 팥죽을 쑤게 된 것이라고 한다.

 

말이란 동물은 뒷걸음보다는 앞으로 뛰는 동물이어서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다.

송학도(장수. 민족의 상징. 잡귀와 부정방지. 충절)

민족의 나무로 알려진 소나무는 천년을 사는 장수 사물 십장생중 하나로 상징한다. 소나무 그림의 유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신라시절의 솔거를 빼고는 이야기가 안된다.

 

솔거는 지금부터 1300년전 화가들 중 가장 으뜸으로 신라선덕 여왕시절 나라가 몹시 어지러워 황용사라는 종교시설을 건립해 백성들의 시선을 황용사로 돌리려 했다.

 

당시 황용사 벽화를 솔거에게 그리도록 했는데 절집 공사가 완성되고 그 절집 벽화에 솔나무를 그려 넣었다. 시간이 흘러 조용한 절집에 어느 날, 새가 수십 마리씩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살생이 금물인 곳에 매일 수십 마리의 새가 죽어 있어 눈이 제일 밝고 재치가 있는 승려가 그곳을 몰래 지키보니 땅거미가 내려 않을 무렵, 새 한마리가 날아와 벽에 부딪쳐 떨어져 죽는 것을 보게 됐다. 또 다른 새가 날아와 부딪쳐 죽고, 또 죽고 그렇게 밤새도록 새는 벽에 부딪쳐 죽고 또 죽은 새가 아침이 되자 절집 마당엔 죽은 새들로 어지러웠다고 한다.

 

솔거의 그림이 진짜 소나무인줄로 알고 새들이 앉으려다 부딪쳐 미끄러져 죽고 말았던 것이다.

 

학이 천년을 산다는 전설이 있어 소나무와 학을 결합시키면 천년에 천년이라 민족의 긍지요 장수를 상징해 금상첨화이다.

매화도(급제, 화합, 풍요, 취직, 승진)

매화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맨 처음 꽃을 피워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도 강인한 대한민국의 어머니를 상징한다.

 

또 매화는 과거시험에 장원급제를 했을 때 사무관대를 입고 임금 앞에 알현을 할 때 임금님은 급제자의 사무관대에 어사화로 꼽아준다. 그래서 매화는 시험생이 수석배지 합격을 기원하는 꽃으로 알려져 왔다.

 

매화도는 장원급제, 합격기원, 불굴의 절조, 속세를 초월하는 것을 상징한다.

호랑이맹호도 (액운방지. 사기충천. 입신양면. 망자명복)

예부터 왕중의 왕인 호랑이는 불교에선 산신이라 칭했고, 민가에서는 제일 무서운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을 집안현관 맞은편에 걸어두면 사나운 기운들이 그 집안을 침범을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제사나 명절 때 그대로 놔두면 조상님도 못 들어 온다고 그림을 떼어서 뒤집어 놓는다.

 

정초에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내다붙이거나 부적에 그려 넣기도 하고, 조정에서는 쑥범(쑥으로 만든 범)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무관의 관복에 용맹의 표상으로 호랑이 흉배를 달아주기도 했다. 선비들도 필통이나 베개 등에 즐겨 호랑이를 새겨 넣었다. 자식의 입신양명을 위해 산방(産房)에 호랑이 그림을 붙여놓기도 하고, 기가 약한 사람에게 호랑이 뼈를 갈아 먹이는 한방요법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장가갈 때 새 신랑이 호신장구로서 장도(粧刀)나 주머니에 호랑이 발톱을 달거나 허리에 찼다. 호랑이의 가죽과 수염도 신령한 힘이 있다 하여 호신물로 찬 것이다.

 

여인네는 장신구나 장식품에도 호랑이를 새겨 넣었으며 심지어 무덤 주위에까지 능호석(陵護石)으로 세워 망자의 명복을 빌기도 했다.

 

호랑이는 '()'이라 하며, 가리키는 시간은 새벽3시부터 5시 사이이고, 음력 1월에 해당한다.

 

입신양명,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 망자의 명복을 빌어준다(무덤 주위에 능호석(陵護石)

묵화 산수(입신양면. 사업 운. 집안의 번창)

묵화산수란 물과 먹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그림을 묵화라고 한다.

 

그림은 본시 남화와 북화로 나누어진다.

 

중국 양자강을 위시로 하여 남화는 양자강 남쪽으로 먹을 위주로 하여 발전하였고, 북화는 양자강 북쪽에서 체색을 위주로 발전한 그림을 북종화라고 한다.

 

이 그림은 그중 양자강 남쪽으로 먹을 위주로 하여 그려진 그림이다.

이 그림의 구도는 몽유겸재산수화와 똑같이 가야산을 그렸다.

 

가야산은 홍성에서 아산까지 걸쳐 있는 산이다.

 

조선 제22대 순조의 아들. 익종의 정비인 풍양 조씨(효명세자)가 대리청정한지 4년만에 죽자 수빈이 되었고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조선 제24대 임금 헌종이 되었다.

 

8세에 왕위에 오르고 수빈 조씨가 왕대비가 되어 수렴청정에 들어갔으나 헌종도 후사 없이 죽자, 강화도령 철종을 왕으로 옹립하다 금방 죽자, 대원군이 둘째 아들 이재황을 왕으로 옹립. 60년 동안 수렴청정하며 189083세의 나이로 경복궁 흥복전에서 죽었다. 남편보다 1년 연상인 조대비는 60년을 더 살았다.

 

이렇듯, 풍양 조씨 조대비가 국정을 개판치자 왕족인 이하응(대원군)은 품은 마음이 있기에 시장의 개가 되어 술을 먹고 개판을 치는 듯 보였지만 노복을 시켜 가야산에 있는 절을 불지르게 하고 명당자리를 차지한 다음. 가야산을 사들이고 남양주에 있는 흥선군의 아버지인 은연군의 무덤을 가야산에 이장을 하고 둘때 아들 이재황을 왕으로 옹립했다

 

자식들의 입신양명. 사업운. 집안의 번창을 상징한다.

관음보살(명당, 소원성취)

관음보살 그림은 종교화로 아름다움에 극치를 이루고 있는데 그 아름다움은 다음과 같다.

 

일반 관음보살은 채색으로 그려졌지만 이 관음보살은 비단을 바탕으로 금분으로 조성되었기에 그 아름다움이 극대화되었고, 이 그림을 그릴 때에는 본인이 티벳본 중, 불상 이마에 천년에 한번 핀다는 우담바라를 보고 그 우담바라를 관음보살 옷자락에 옮겨 놓아 그 아름다움이 배가되어 일생에 한번보기 어렵다는 관음보살을 조성했다.

 

관음보살에 염원을 하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도 있다.

<독도수호국민연합 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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